교정본 말씀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12장입니다. 읽기는 8절, 9절, 10절을 하겠습니다. 제가 한 절, 여러분이 한 절, 마지막 절은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은 고린도전서 12장에 속한 구절입니다. 고린도전서 12장부터 14장은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은, 성령의 은사 하면 아예 처음부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 있어요. 좀 신비주의자들이나 별나게 믿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아예 그쪽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분들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또 극과 극으로 성령의 은사에 매달리는 분들도 있어요. 그러면서 성령 은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을 아예 불신자 취급하면서 그쪽을 굉장히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쪽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것을 생각해 보려면 은사가 무엇인가를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오늘 읽은 부분이 여러 은사들을 이야기하고 있거든요.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 은사,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의 은사,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병 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함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을 통역함을 주십니다. 바로 이런 은사들이 고린도전서에 써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만 있는 게 아니에요. 로마서에도 은사들이 나오는데요. 로마서 12장 6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위로하는 자는 위로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하면서 여러 다른 은사들이 또 설명됩니다. 이 외에도 여러 가지 은사들이 있을 수 있어요. 주의 몸된 교회를 세우는 데, 주님의 몸된 교회를 봉사하는 데, 성도를 세우는 데 사용되는 많은 은사들이 성경에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은사들을 주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7절에 써 있어요.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에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특별히 은사 속에는 성령을 나타내신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은사와 성령은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은사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은사라고 표현합니다. 성령님을 제대로 볼 수 있게 해줍니다. 제가 늘 하는 얘기지만, 올해 표어가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교회’인데요,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우리가 경험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성령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은사를 제대로 알 필요가 있어요. 그럴 때 성령님을 우리가 제대로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쪽으로 우리가 보려고 합니다.
은사를 통해 성령님을 경험하는 것, 이게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은사를 통해 성령님을 경험하는 우리들,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를 통해 나를 향한 성령님의 역사를 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운전을 하는데 옆에 닭이 있는데 굉장히 빨리 뛰는 닭이 있었어요. 보니까 막 가요. 그래서 어디로 가지? 하고 보니 어느 집으로 딱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아, 저 닭을 사야겠다 해서 그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주인한테 그 닭을 팔라고 했어요. 이만큼 줄 테니까 하십시다 했는데 주인이 별로 팔 생각이 없는 것 같아요. 그래서 더 많이, 더 많이 했는데 나중에 주인이 화를 내면서 안 판다는 거예요. 돈을 더 주겠다고 하니까 팔라 그러니까 결국엔 주인이 그러더래요. “아니, 잡혀야 팔죠.” 주인도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혹시 이것처럼 은사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이 없는가를 생각해 봐야 돼요. 많은 분들은 은사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요. 어떤 사람은 관심이 있어도 내가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도 모르고요. 받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고요. 여러분들은 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은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가 뭐냐면, 오늘 말씀 1절에 시작을 12장 절이 이렇게 시작해요.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신령한 건 뭐냐면 spirit 기프트, 그게 은사예요. 은사에 대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된다고 절이 시작해요. 우리 은사에 대해서 꼭 알 필요가 있어요. 예, 꼭 알 필요가 있다는 거죠. 그 이유가 뭐냐면 여러분들이 spirit 기프트 중에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뭔지 아세요? 가장 큰 선물이 뭘까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 예, 그게 이제 3절에 이야기하고 있어요.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다시 말해서,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거예요.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는 거예요. 예수를 믿게 되고 구원을 얻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뭐냐면 예수를 믿게 하는 거예요. 이게 가장 큰 은사예요. 그러니까 우리가 은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어요. 은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어요.
그런데 무엇보다도 우리가 은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 이유는 뭐냐면 7절에 이렇게 표현해요.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을” 뭐를 통해서 나타내세요? 은사를 통해서 성령님을 나타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은사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돼요. 깊이 묵상해야 되고 은사를 사모해야 되고 하는 이유가 뭐냐면 은사를 우리가 보게 되면 내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거예요. 성령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보게 되고 성령님의 능력을 우리가 체험하고 간증할 수 있게 되는 게 이 은사를 통해서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고린도서 4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이 능력에 있는 것을 내 삶으로 체험하고 간증할 수 있는 게 뭐냐면 바로 은사에 대해서 제대로 우리가 알 때, 우리가 역시 성령님이 나와 함께하시고 성령님이 내 삶 속에 능력을 베풀고 계시는 걸 알게 되는 거예요.
예, 뭐 예를 들어 볼게요. 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하는 게 좀 웃기지만, 예, 뭐 저에 대해서 제일 잘 아는 게 저기 때문에 이렇게 설명하면 이해가 되실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성령의 은사 받는 것 중에 예언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 그리고 지혜의 은사, 지식의 은사, 이런 것들을 성령님께서 저에게 주신 것 같아요. 예, 이게 뭐 하는 데 필요한 거예요? 설교하는 데 필요한 거예요. 설교하는 데. 그러니까 설교하라고 저에게 이런 은사를 주셨어요. 그런데 보세요, 제가 은사를 받았다고 해서 제 스스로가 아무런 성령님을 의지하거나 이런 것 없이 ‘난 은사가 있으니까 난 잘할 거야’ 하고 한다고 잘할까요? 아니에요, 절대로 그렇지 않아요. 예,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는 있지만, 이 은사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되고 이 은사를 더 사모하고, 그러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해야만, 의지해야만 이 은사가 제대로 워킹하는 거예요. 워킹하는 거. 그러니까 설교도 마찬가지예요. 은사가 있으니까 뭐 일주일 내내 그냥 탱탱 놀다가 ‘하나님, 저 잘 테니까 은사 주세요’ 하고 아침에 일어나서 제가 여러분들한테 아침에 와서 설교를 하느냐, 말이 안 돼요.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 이 은사가 있다는 건 뭐냐면 더 성령님을 그 은사 때문에 의지해야만, 거기에 능력이 나타나고 거기에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간절해져서 성령님을 붙들게 되고, ‘성령님, 어떻게 할까요? 예, 하나님, 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어떻게 바라봐야 되고, 어떤 방향으로 노치해야 될까요? 도와주세요 성령님. 여기서 어떤 포커스를 하기 원하십니까?’ 이런 게 더 간절해요. 그렇게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설교를 하다 보면, ‘아, 성령님의 은혜나 성령님께서 도와주셨고 성령님께서 함께 하셨구나, 그러기 때문에 또 한 주 무사히 지나갔구나, 한 주 설교를 감당하게 됐구나’ 하면서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 은사가 뭔지를 알고 은사를 붙들고 성령님을 더 의지하다 보면 성령님의 능력이 함께함을 체험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뭐 옛날에는 춤추며 나이트클럽 갔죠? 뭐 저는 지금 요즘에 어디 가는지 모르니까 나이트클럽이라고 얘기하죠. 새벽 3시, 4시에 누가 나이트클럽에 가서 춤추고 왔다고 자랑을 해요. 그럼 그 얘기를 듣고 부러워하는 사람은 신앙이라고 우리가 할 수가 없겠죠. ‘아, 나도 저런 거 한 번 해봤으면 좋겠다.’ 그런 집사님은 집사가 아니라 ‘잡사’라고 부르는데, 예, 정말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돼요? 그 사람을 보면서 뭐라 그래야 돼요? 그걸 자랑으로 얘기하는 사람한테 불쌍하게 보여야죠. ‘아, 저 사람은 저게 그렇게 저 사람의 기쁨의 근원인가 보구나.’ 그런데 교회 다니는 우리 신앙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얘기하면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 난 언제 저런 거 해보지?’ 왜 부러워할까요? 뭐가 그리 부러울까요? 그 이유가 뭘까요? 저는 그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예수 믿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예수 믿는 즐거움이라는 게 어디 있냐면, 바로 은사랑도 연관이 있어요. 성령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다 보면, 그 위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심과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면서, 거기서 누리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 기쁨 때문에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환락 가운데서 살아가는 게 부럽지가 않아요. 오히려 불쌍하게 보이는 이유가 우리에게는 세상이 이해할 수 없는 그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그런 것을 간증하고 그런 기쁨이 있기를 원해요. 그러기 위해서 바로 이 은사를 사모해야 돼요. 은사를.
그래서 고린도전서 14장 1절에 보면 이렇게 써 있어요.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 여기서 신령한 것이란 게 뭐냐면 바로 은사거든요. 여러분들 은사를 사모하기 원해요. 그래서 내게 주신 은사가 뭔지를 깨닫는 우리가 되길 원하고요. 주신 은사 때문에 더욱더 열심으로 봉사하고 섬김으로 말미암아, 그 위에 성령의 능력, 성령의 인도하심이 경험됨으로 말미암아, 아, 내 삶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나도 간증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아멘.
두 번째는 그런데 이 좋은 은사, 성령님께 민감해야지 엉뚱한 영의 세계에 민감해서는 안 된다는 겁니다. 고린도 교회는 굉장히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어요. 넘치는데 이게 교회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예, 그 문제 때문에 사도 바울이 2절에 이런 얘기를 해요.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 말 못하는 우상에게로 끌려갔었다”고 얘기해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너 예수 믿기 전에 너희는 우상을 쫓아서 살았던 그 모습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하는 거예요. 예, 여기서 끌려갔다는 얘기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우상을 섬겼다는 게 아니라, 우상을 섬기면서 벌어지는 영적인 모든 일에 현혹되어서 그것에 빠져서 살았다는 얘기예요. 그러니까 고린도 교회는 굉장히 영적으로 탁한 곳이었어요. 우상들이 그냥 죽은 우상처럼 아무런 역사가 없던 일들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면서도 방언도 하고, 예, 여러분들 그거 아시죠? 절에 가도 방언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아시죠? 모스크에 가도 이 사람들도 이슬람 교도들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뭐 예수 믿는 사람만 방언하는 게 아니에요. 예, 그러니까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방언을 하지만, 그들은 다른 영에 붙잡혀서 그런 일들을 해요. 그래서 고린도후서 11장 14절에 보면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사도 바울이 그런 얘기를 해요. “야, 그것들 보면서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 그 이상한 거 아니야. 그들이 영적인 이상한 것들을 행하고 영적인 역사가 일어나는 거 이상하게 여기지 마.” 왜냐하면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해서 그런 일을 행하기도 해요. 그러다 보니까 교인들만 방언하는 게 아니에요. 교인들만 방언하는 게 아니기 때문에. 그런데 문제는 뭐냐면, 옛날에 거기에 이끌려 살던 사람들 있잖아요. 그 우상을 섬기면서 거기에 갇혀 살았던 사람들이 자꾸 그런 쪽으로만 생각하면서, 그런 쪽으로 메이게 돼요. 어떤 분은 무당을 하시던 분이 예수를 믿잖아요? 그럼 자꾸 신비적인 것을 못 버리는 것들을 보게 되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고린도 교회 성도들은 자꾸 우상이 왕성한 그러한 곳에 있다 보니까 신비적인 것을 버리지 못하고, 또 그게 최고인 줄 알아요. 그런 현상들이 최고인 줄 알아요. 그게 예수를 잘 믿는 현상이라고 자꾸 생각하니까 사도 바울이 “아니야 아니야.” 그런데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은사가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인지 잘못된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3절에 그런 얘기를 하는 거예요.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아요.” 그러니까 누구든지 제대로 된 은사, 성령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있으면 예수를 저주하지 않아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돼요. 예, 그리고 성령을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라고 제대로 인정하게 만드는 그러한 상황이나 그런 은사들은 제대로 된 거예요. 예, 그래서 이런 것을 가지고 분별할 필요가 있어요. 영적인 건 여러분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어떤 영적인 것이 벌어진다고 해서 그게 다 성경적이고 제대로 된 영적인 게 아니에요. 예, 그래서 이게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 성령의 역사인지 분별하라.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물론 예를 들면 여기 은사 중에 병 고치는 은사가 있거든요. 병 고치는 은사. 옛날 한국에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그런데 굉장히 많은 분들이 그게 성령으로부터 온 줄 알았는데, 굉장히 많은 분들이 교주가 되고 막 그런 일도 있잖아요. 예, 그러니까 병을 진짜로 고쳤다고 해서 그게 다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거예요. 항상 어떻게 분별해야 되냐면, 고린도전서 12장 7절에 나온 것처럼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함이라.” 이걸 잊지 말아야 돼요. 나의 신앙에 유익해야 되고요, 교회에 유익해야 되고요. 은사는 교회에 유익해야 되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유익해야 이게 바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는 것을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은사가 있지만 사도 바울은 이 은사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해요. 14장 1절에 보면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언의 은사를 가지려고 하라라고 얘기해요. 왜냐하면 이 예언은 아까도 기도 말씀과 연관이 있는 거거든요. 가르침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 그래야 말씀이 있어야 말씀이 있어요. 이것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기도 합니다. 예,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 이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죠. 예, 1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역하기를 기도하라”고 얘기해요. 왜 방언을 하는 사람은 내가 뭔 소리 하는지를 모르고 말씀을 하는 거거든요.
예,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그런 얘기를 해요. “내가 얘기를 했는데 내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니까, 이게 성령이 주신 건지 아닌지 헷갈리잖아.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 통역을 할 수 있게 돼서 이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그런 얘기를 해요.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영은 좋은데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해요. 왜냐하면 뭔 소리 하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그러니까 그것을 통역할 수 있으면, 예, 통역할 수 있으면. 그래서 방언의 은사가 있는 분들은 굉장히 좋아요. 왜냐하면 기도도 되게 열심히 하고요. 기도도 오래하시고. 예, 그것 때문에 신앙이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분들도 되게 많아요. 되게 많지만 그러나, 이것이 성령님이 주신 것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 통역의 은사도 구하라 라고 얘기해요.
예, 그러면서도 야고보서 5장 14절에 그런 말씀 하죠.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교회 장로님들이 병 고치는 은사가 있는 분들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교회를 대표하는 분들이에요. 다시 말해서, 교회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는 이야기거든요. 예, 그러니까 은사가 있든 없든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바로 이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도록 하는 거죠. 예,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영 분별의 은사가 필요하거든요. 예, 10절에 보면 영들 분별하는 은사가 나오죠. 그런데 우리가 좀 조심해야 되는 것 중 하나가 뭐냐면, 어떤 분은 자기에게 이런 은사가 있다고 착각해서 마음대로 남을 정죄하고 판단해요. “저 인간은 아니다.” “저건 사탄의 일이다.”라고 전혀 두려움 없이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그건 내 판단이지, 성령님께서 주시는 판단인지, 내가 영 분별의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영 분별의 은사는 다른 두 가지 은사가 병행이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뭐냐면, 8절에 보면 두 가지 은사가 나오죠. 예, 거기 보면 지혜의 말씀, 또 지식의 말씀. 이걸 제대로 가지고 있어야 영 분별의 은사가 나오는 거예요. 자꾸 제 얘기를 해서 죄송한데,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제가 살던 볼티모어에 한국에서 만 명 정도 모이는 교회가 갑자기 볼티모어에 기독교 라디오를 만들어 준대요. 한인들을 위해서. 예, 그래서 엄청난 돈을 서포트해 가지고 볼티모어에 기독교 라디오가 생긴다는 거예요. 이제 라디오만 틀면 기독교 방송이 나오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분들이 기대를 했어요. “와, 한인들도 별로 없는데 참 교회가 큰 일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 담임 목사님 간증 책을 쫙 돌려줬거든요, 사람들한테 나눠줬어요. 저도 이제 읽어 봤죠. 그런데 그 책을 딱 읽자마자 “아, 이게 이단이냐?” 그냥 그분의 간증한 게 있는데 딱 이단이라고 생각되었어요. 예, 그래서 “야, 이거 참 위험한데.” 그런데 뭐 제가 힘이 있어요? 전도사가. 예, 막을 수도 없는 거고. 그냥 제가 스스로 딱 생각했는데, 딱 1년 정도 지나니까 한국의 신문에 크게 났더라고요. 그 교회, 만민중앙교회예요. 예, 만민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라는 분인데 이단으로 판명됐다고. 그분 감옥 갔잖아요. 예, 그리고 그 사람이 감옥에서 죽었어요. 감옥에서 있다가 죽었거든요. 그래서 그 딸인가 누군가가 지금도 그 목회를 이어받아서 쌍둥이 목회를 해요. 예, 여자 두 분이서 목사가 돼서 쌍둥이 목회를 하고, 지금도 그 이재록 목사 사진 앞에다 놓고 절하고 “우리 아버지가 교회를 만드신 아버지다.” 그러면서. 하여튼. 그런데 저는 그게 이단이라는 게 나오자마자 스스로 그런 생각했어요. “내가 영 분별의 능력이 있나, 은사가 있나.” 그리고 또 한번은 어떤 분이 저한테 천국에 갔다 왔다고 자기가 쓴 간증문을 주셨어요. “목사님 읽어보라”고. 딱 읽자마자 “아, 이분도 이단이다.” 그런데 문제가 뭐냐면 그 앞에 누가 추천서가 있었어요. 추천해 준 분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서 큰 교회 담임 목사님이. 그래서 제가 그 책을 읽고 “이분 왜 이런 사람한테 추천을 했지?” 좀 걱정을 하면서 읽었죠. 걱정을 했거든요.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좀 있다가 그 책도 이단이라는 얘기가 나왔어요. 그래서 “이분 어떻게 됐지?” 봤더니, 그분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추천해 주신 분이 “자기가 추천한 게 아니라 자기 교회 비서가 추천한 것을 올린 거다. 자기는 몰랐다.”고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제가 그런 거 보면서 “내가 어떻게 이런 걸 딱 알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에요. 말씀을 알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신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신학을 통해서 말씀 속에 있는지, 말씀에 맞는지 아닌지를 아는 거지. 뭐 제가. 그런데 자연스럽게 분별이 되는 거예요. 분별이. 그래서 영 분별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의 은사가 같이 있어야 가능한 거다라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사람을 정죄하게 되고 하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라는 거예요.
또 특히 예언의 은사도 있거든요. 그런데 많은 분들이 착각하면 안 돼요. 여러분들, 예언의 은사는 미래를 예측하는 게 예언의 은사가 아니에요. 그런데 여러분들이 예언의 은사를 미래에 어떻게 벌어질 일을 예언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구약의 선지자들은 “몇 년 뒤에 이스라엘이 망할 거고, 몇 년 뒤에 유다가 망할 거니까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살아라.”고 예언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 예언이라는 게 그런 거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아니에요. 더 이상 예언의 은사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 이유가 뭐냐면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에요. 신구약 성경으로 더 이상 하나님은 새로운 말씀을 주시지 않아요. 그러니까 구약의 선지자처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전달한다는 게 성립이 안 돼요. 어디서 말씀을 받는 거예요? 신약 성경을 통해서 내가 말씀을 받아서 전달해야만 되기 때문에. 물론 신구약 성경 안에 그런 건 있어요. “내가 다시 올 거야.” 그 미래에 대한 얘기잖아요. 재림의 주님, 뭐 이런 얘기는 있을 수 있어요. 그런데 그 말씀 속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새로운 말씀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거예요. 그 이유는 뭐냐면 성경이 완성되었기 때문이에요.
요한계시록 22장 18절에 보면,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거거든요. 이런 얘기를 해요: “내가 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에게 증언하노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친구야, 성경 외에 어떤 말씀을 내가 받았다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게 신구약 성경에 없잖아요. 그러면 큰일 나는 거예요. 그게 이단이에요. 그래서 하나님이 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거예요. 이것만큼 엄청난 이단은 없거든요. 이것만큼 사람들을 현혹하게 하고 무너지게 하는 게 없기 때문에요.
그래서 지금은 예언의 은사라는 건 뭐냐면, 성경의 말씀을 받아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에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점쟁이처럼 미래 얘기를 하고 그게 맞고 틀리고 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가 아니에요. 혹시 그런 것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이단이고, 여러분들이 조심해야 되고, 그것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해요. 그러니까 이러한 것들을 은사라고 가장해서 성령이 아닌 것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가 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로는 우리는 더욱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 마지막 절인 31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해요: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렇다면 가장 큰 은사는 뭘까요? 더욱더 큰 은사는 뭐냐 하면, 이게 12장 마지막에 있거든요. 그래서 더욱더 큰 은사에 대한 설명이 그다음 장에 나와요. 고린도전서 13장에 나와요. 그럼 더욱더 큰 은사는 뭘까요? 고린도전서 13장은 무슨 장이에요? 사랑 장이죠. 그러니까 더욱더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더욱더 큰 은사, 하나님 저도 이 사랑의 은사를 저에게 주세요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는데요. 이 사랑의 은사는 우리가 이미 가진 은사에 사랑의 은사가 포함되어서 은사가 완성되게 해요.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의 은사를 갖게 되면 이것이 무조건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나아가서 들려지게 되는 거죠. 섬김의 은사도 마찬가지예요. 섬김의 은사도 사랑의 은사가 더해짐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섬기게 되는 거죠. 만약에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섬김의 은사 때문에 더 부딪히는 사람들이 많아요. 나는 열심히 치우고 있는데, 저기 노는 인간을 보면 막 화딱지가 나거든요. 그러면서 저 나쁜 인간들 욕하면서 섬기는 거예요. 그러면 교회는 시험에 드는 거예요.
사랑의 은사를 가져야만, 아 저 사람도 좀 그럴 수 있지, 근데 나에게 주신 은사는 이거니까 나는 여기 충성해야겠다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모든 은사에 사랑의 은사가 더해질 때 이게 제대로 되는 거예요. 그런데 왜 사랑의 은사를 더 사모하라고 얘기할까요? 사랑의 은사가 왜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오늘 말씀에 보면, 고린도전서 12장 12절에 보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무슨 얘기냐면 한 몸이 돼야 하기 때문에 그래요.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붙어 있는 지체들이 사랑으로 연결이 되어야 하나가 되는 거예요.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없기 때문이에요. 성경은 하나 되는 것을 굉장히 강조해요.
고린도전서 12장 13절에 보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한 몸이 되었고, 또한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언제든지 하나 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하나 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의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는 거죠. 우리의 어느 부분 중에, 섬김의 부분 중에 어느 부분 중에 하나가 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해요. 하나님, 사랑의 은사를 나에게 주세요. 사랑의 은사를 주셔서 하나 되게 해주세요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죠.
또 사랑의 은사가 필요한 이유는 뭐냐면, 고린도전서 12장 26절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26절 전에 24절 먼저 보죠. “우리가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으니라.” 그래서 사랑의 은사가 필요한데, 이게 무슨 얘기냐면, 여러분들, 이미 아름다운 지체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좋아요. 예를 들어서 우리 몸에 이렇게 있으면 머리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머리는 다들 인정해요. 머리가 얼마나 중요한데, 머리 다치면 큰일 나죠. 그래서 다들 인정해요. 그런데 하찮게 여기는 부분들이 있어요. 예를 들면 손가락의 손톱, 이걸 그렇게 귀중하다고 많이들 생각 안 할 수 있어요. 근데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여러분들 귀가 간지러우면 이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그런데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이게 귀한 줄 몰라요. 사랑의 은사가 있으면 하찮은 것도 우리는 존귀하게 봐요.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에서 어떤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은 다들 인정해 주고 좋아해요. 그런데 교회에서 정말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분들 있잖아요. 그 사람을 존귀하게 보는 사람은 누구냐면, 사랑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존귀하게 보게 돼요.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누구나 다 큰 일만 하고 싶어 해요. 모두가 다 귀한 줄 보게 돼요. 부족한 지체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 거예요. 그래서 고린도전서 12장 24절에 보면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신다”는 것을 보게 되는 거예요. 이게 사랑의 은사를 가진 성도의 모습이에요. 그래서 사랑의 은사가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또 사랑의 은사가 필요한 이유는 뭐냐면, 고린도전서 12장 26절에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는 거거든요.” 아무리 부족한 새끼손가락이지만 여기에 염증이 생기면 내 온몸이 아파요. 하나가 아프면 다 아프게 되는 게 정상이에요. 그게 교회의 모습이에요. 그리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는 게 원래 그래야 돼요. 그런데 교회가 다 그러냐, 그렇지가 않거든요. 교회가 누가 힘들고 어렵다면 우리가 함께 아프고 함께 슬퍼하느냐, 그렇지가 않아요. 그런데 언제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사랑의 은사가 있을 때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사랑의 은사가 필요하다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가진 은사가 뭔지 몰라요. 그러나 그 은사로 주님을 섬겨 나갈 때 저는 그 위에 사랑의 은사로서 덧입혀 주기를 소망하며 기도합니다. 그래서 성령께서 더 크게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을 내리죠. 여러분들은 은사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은사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들이 받은 은사는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중에 시간이 되면 은사 세미나도 하고, 여러분들의 은사를 발견하기 위해 여러 가지도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가장 쉬운 은사 발견 방법은 뭐냐면, 여러분들이 관심이 가는 거예요. 그럼 거기에 은사가 있는 거예요. 관심이 가면 처음에는 비판할 수도 있어요. “아, 왜 우리 영락교회는 이런 걸 잘 못 하지?” 그 은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럼 여러분들이 하세요. 혼자서 못 하겠으면 저한테 와서 얘기해 주세요. “아, 목사님 안타까워요. 우리 교회에서 이런 걸 잘하면 좋은데.” 그러면 저는 비판한다고 생각 안 하고요, 여러분들을 도와드릴게요. 힘 닿는 대로요. 왜냐면 거기에 은사가 있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거예요. 은사가 없으면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런 걸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은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바로 그 은사는 성령님이 주신 은사이기 때문에 그래요. 그 은사를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면 성령님이 왜 주셨는지, 그리고 성령님이 그 은사 위에 능력을 부어주심을 체험하지 못해요. 저는 여러분들이 은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은사를 활용하려고 하면서 더욱더 성령님을 의지하면 살다 보면 예수 믿는 재미가 뭔지 알아요. 바로 그걸 느끼기 원해요.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신다는 게 뭔지를 알고, 그걸 간증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원해요.
그런데 아무리 은사가 중요하더라도 엉뚱한 영에 빠지지 않기를 원해요. 은사는 영적인 것이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내가 그것 때문에 넘어질 수 있어요. 교만하게 만들기도 해요.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게 성령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라는 것에 대한 영 분별이 필요해요. 항상 말씀 안에서, 성경 안에서, 성경대로 말씀대로 그 은사를 사용하고 섬겨가는 여러분들이 되셔야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그 받은 은사 위에 사랑의 더 큰 은사가 덧입혀짐으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한 지체로서 제대로 서고, 작은 것을 보면서도 존귀하게 여길 줄 알고, 정말 동고동락할 수 있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한 지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그런 사랑의 은사를 갖는 성도가 되어야 해요.
바로 그러한 성도들을 통해서, 우리가 성령의 역사 속에, 성령의 함께하심 속에, 성령의 능력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상 추출 말씀 원본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고린도전서 어 12장 있데요 읽기는 8절 9절 10절 제가 한 절 여러분이 한 절 마지막 절은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가 먼저 읽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을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으로 믿음을 어떤 사람에는 한성으로는 같이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 분별함을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방언들 통역함을 주시나니 오늘 우리가 읽은 구절은 고린도서 12장에 속한 구절입니다 고린도서 12장부터 14장은 의 은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들입니다 오늘은이 은사에 대한 이야기를 좀 말씀드려 보려고 합니다 보통 사람들은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은 성령의 사하면 아예 처음부터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는 분들이
있어요 좀 신비주의자들이 뭐 신자다 별나게 믿는 사람이다라고 생각을 하면서 아예 그냥 그쪽으로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분들이 있어요 그로 어떤 사람은 또 극과 극으로 성령의이 은사에 매달리는 분들이 되 또 있어요 예 그러면서 성령 은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예 그냥 불신자 취급 해버리면서 그 그쪽으로 굉장히 강조하는 또 다른 쪽에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어떤 쪽에 속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걸 생각해 보려면 은사에 뭐가 있나 를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어요 오늘 읽은 부분이 어 여러 은사들을 얘기하고 있거든요 어떤 사람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지혜의 말씀 은사 지혜의 말씀 또 어떤 사람에게는 같은 성령을 따라 지식의 말씀을 또 지식의 말씀이라는 은사가 있고요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같은
40:19 성령으로 믿음의 은사 믿음을 또 어떤 사람에게 한 성령으로 병고치는 은사를 어떤 사람에게는 능력 행함을 어떤 사람에게는 예언함을 또 어떤 사람에게는 영들을 분별함을 또 다른 사람에게는 각종 방언 말함을 또 어떤 사람에 방언을 통역함을 바로 이런 은사들이 고린도전서에 써 있습니다 근데 여기만 있는게 아니에요 로마서에 은사들이 나오는데요 로마서 12장 6절에 보면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어 혹 예언이 믿음의 분수대로 예 또 섬기는 일이면 좀 다른 부분을 얘기하죠 섬기는 은사 섬기는 일 혹 가르치는 자면 여기도 이제 고린도전서 나오지 않은 은사인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예 또 8절에 혹 위로하는 자는 위로하는 일로 어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다스림의 은사가 있으면 부지런함으로 또 긍휼을
41:25 베푸는 은사가 있으면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하면서 여러 다른 은사들이 또 설명되어지는 않지만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은사들이 있을 수 있어요 주의 몸된 교를 세우는데 주님의 몸된 교를 봉사하는데 성도를 세우는데 사용되지는 많은 은사들이 어 성경에 있습니다 근데 왜 우리에게 이런 은사들을 주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7절에 써 있어요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게 은사를 주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유익하도록 하기 위해서에 은사를 주세요 특별히 은사 속에는 성령을 나타내신다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그니까 이게 은사와 성령이라 굉장히 밀접한 관계가 있어요 은사는 성령이 주시는 선물을 은사라고 표현 을 합니다면
42:30 어 성령님을 제대로 볼 수가 있게 되어져요 제가 늘 하는 얘기지만 올해 표가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는 교회인데요 하나님의 나라를 체험하기 위해서는 성령 님의 역사하심을 우리가 경험해야 되거든요 근데이 성령님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은사를 대대로 알필요가 있어요 그럴 때 성령님 우리가 제대로 경험하게 되어진다 그래서 오 쪽으로 우리가 보려고 합니다 은사를 통해서 성령님을 경험하기 이게 오늘 설교 제목이에요 예 은사를 통해서 성령님을 경험하는 우리들 어 그러기 위해서는 첫째로 성령이 주신는 은사를 통해서 나를 향한 성령님의 역사를 알아가도록 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운전을 하는데 옆에 닭이 있는데 굉장히 빨리 뛰는 다이 있었어요 보니까 막 가요 그래서 어 어디로 가지 하더 어느 집으로 딱
43:34 들어가더라고요 그래서 아 저 닭을 사야 되겠다 해서 그 집에 들어가서 그 집 주인한테 그 닭을 팔려고 했어요 이만큼 줄테니까 하십시 없는데 식군 등이요 별로 팔 생각이 없는 거 같아요 예 그래서 더 더 많이 더 많이 했는데 아예 나중에 화를 내면서 주인이 화를 내면서 안 판다는 거예요 그니까 돈을 더 주겠 다니까 팔라 그러니까 결국엔이 주인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아니 잡혀야 팔 팔죠 그 얘기를 하더래요 그니까 주인도 너무 빨라서 잡을 수가 없는 거예요 근데 많은 성도들이 혹시 이것처럼 은사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없는가를 생각해 봐야 돼요 굉장히 많은 분들은 은사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요 어떤 사람은 관심이 있어도 내가 어떤 은사를 받았는지도 모르고요 예 뭐 받고 싶다는 생각도 안 할 수도 있는 분들도 있고 예 여러분들은 은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은사에 대해서 근데이 은사에 대해서 우리 깊이 생각해야
44:38 돼요 그 이유가 뭐냐면 오늘 말씀 1절에 시작을 12장 절이 이렇게 시작을 해요 형제들아 신령한 것에 대하여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여기서 신령한 건 뭐냐하면 spirit 기프트 그든 그게 은사에 은사에 대해서 우리가 꼭 알아야 된다라고 절에 시작을 그렇게 해요 우리 은사에 대해서 꼭 알 필요가 있어요 예 꼭 알 필요가 있다라는 거죠 예 그 이유가 뭐냐면 여러분들이 스피리 기프트 중에 우리가 받은 가장 큰 선물이 뭔지 아세요 가장 큰 선물이 뭘까요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 중에 가장 큰 선물 예 그게 이제 3절에 이야기하고 있어요 3절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하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으로 아니하고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다시 말해서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예수를 믿는 거예요 성령님 때문에 우리가 구원을 얻는 거 예수를
45:42 믿게 되고 구원을 얻는 거거든요 그니까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은 뭐냐면 예수 믿게 하는 거예요 이게 가장 큰 은사 가장 큰 은사에 그러니까 우리가 은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어요 은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어요 근데 무엇보다도 우리가 어 은사에 대해서 알 필요가 있는 이유는 뭐냐면 7절에 이렇게 표현해요 7절에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을 뭐를 통해서 나타내세요 은사를 통해서 성령님을 나타내시기 때문에 우리는이 은사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가져야 돼요 깊이 묵상해야 되고 은사를 사모해야 되고 하는 이유가 뭐냐면 은사를 우리가 보게 되면 내 삶에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보게 되는 거예요 성령님이 나와 함께하심을 보게 되고 성령님의 능력을 우리가 체험하고 간증할 수 있게 되는게이 은사를 통해서이기 때문에 그래요 예 그래서 고린도서 4장 20절에 보면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고 얘기하잖아요 근데이 능력에 있는 것을 내 삶으로 체험하고 간증할
46:47 수 있는게 뭐냐면 바로 은사에 대해서 제대로 우리가 알 때 우리가 역시 성령님 나와 함께하시고 성령님 내 삶속에 능력을 베풀고 계시는 거를 알게 되어지는 거예요 예 뭐 예를 들어 볼게요 저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을 하는게 좀 웃기지만 예 뭐 저에 대해서 제일 잘하는게 저기 때문에에 이렇게 설명을 하면 이해가 되실 것 같아요 저 같은 경우에는 성령의 은사 받는 것 중에 어 예언의 은사와 가르치는 은사 그리고 어 지혜의 은사 어 뭐 지식의 은사 어 이런 것들을 성령님께서 저에게 주신 거 같아요 예 이게 뭐 뭐 하는데 필요한 거예요 설교하는데 필요한 거예요 설교하는데 그니까 설교하라 저에게 이런 은사를 저에게 주셨어요 근데 보세요 제가 은사를 받았다 그래서 제 스스로가 아무런 뭐 성령님을 의지하거나 이런 건 없이 난는 은사가 있으니까 난
47:51 잘할 거야서 한다고 잘할까요 아니에요 절대로 그렇지가 않아요 예 성령님께서 주신 은사는 있지만이 은사를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가야 되고이 은사를 더 사모하고 더 그러기 위해서 성령님을 의지해야만 의지해야만이 은사가 제대로 워킹하는 거예요 워킹하는 거 그니까 설교도 마찬가지예요 은사가 있으니까 뭐 일주일 내내 그냥 탱탱 놀다가 하나님 저 잘테니까 은사 주세요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서 제가 여러분들한테 아침에 와서 설교를 하느냐이 말이 안 돼요 그렇게 되지가 않아요이 은사가 있다는 건 뭐냐면 더 성령님을 그 은사 때문에 의지해야만 이게 거기에 능력이 나타나고 거기에 역사하심이 나타나는 거예요 그렇기 때문에 더 간절해져서 성령님을 붙들게 되고 성령님 어떻게 할까요 예 하나님 어이 성경 구절을 가지고 어떤 방향으로 어떻게 어떻게 바라봐야
48:55 되고 어떤 방향으로 로치를 해야 될까요 도와주세요 성령님 여기서 어떤 포커스를 하기 원하십니까 이런게 더 간절해요 그렇게 성령님을 의지하면서 설교를 하다 보면 아 성령님의 은혜나 성령님께서 도와주셨고 성령님께서 함께 하셨구나 그러기 때문에 또 한주 무사히 지나갔구나 한주 설교를 감당하게 됐구나 하면서 성령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어지는 거죠 그러니까이 은사가 뭔지를 알고 은사를 붙들고 성령님을 더 의지하다 보면 성령님의 능력이 함께함을 체험하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거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뭐 옛날에는 춤추어 나이트 클럽 같죠 뭐 저는 지금 요즘에 어디 가는지 모르니까 이제 나이트 클럽이라고 얘기하죠 새벽 3시 4시에 이렇게 누가 나이트걸 가서 춤추고 왔다고 자랑을 해요 그럼 그 얘기를 듣고 예 부러워하는 사람은 신앙이라고
49:59 우리가 할 수가 없겠죠 아 나도 저런 거 한번 해 봤으면 좋겠다 예 그런 집사님은 집사가 아니라 잡사 그 부르는데 예 정말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해야 돼요 그 사람을 보면서 뭐라 그래야 돼요 그걸 자랑으로 얘기하는 사람한테 불쌍하게 보여야죠 아 저 사람은 저게 그렇게 저 사람의 기쁨의 근원인가 보구나 예 근데 교회 다니는 우리 신앙인들 중에서도 그렇게 얘기하면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어요 아 난 언제 저런거 해 보지 왜 부러워 할까요 뭐가 그 부러울까요 그 이유가 뭘까요 저는 그 이유가 그거라고 생각해요 그 이유는 예수 믿는 즐거움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근데 예수 믿는 즐거움이라는게 어디 있냐면 바로 은사랑도 연관이 있어요 성령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주님을 섬기다 보면 그 위에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시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심과 성령님의 함께하심을 체험하면서 거기서 누리는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가 없 없는 거거든요 그 기쁨 때문에 우리는 어 세상 사람들이 환락 가운데서
51:03 살아가는 그게 부럽지가 않아요 오히려 불쌍하게 보이는 이유가 우리에게는 세상에 이해할 수 없는 그 기쁨이 있기 때문에 그렇거든요 저는 우리 성도들이 그런 것을 간증하고 그런 기쁨이 있기를 원해요 그러기 위해서 바로이 은사를 사모해야 돼요 은사를 그래서 고린도서 14장 1절에 보면 이렇게 써 있어요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라 여기서 보면 신령한 것이라는게 뭐냐면 바로 은사 그든 여러분들 은사를 사모하기 원해요 그래서 내게 주신 은사가 뭔지를 깨닫는 우리들이 되어지길 원하고요 주신 은사 때문에 더욱더 열심으로 봉사하고 섬김으로 말미암아 그 위에 성령의 능력 성령의 인도하심이 경험되어 줌으로 말미암아 아 내 삶에 성령님의 역사하심을 나도 간증할 수 있는 예 그런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아멘 두 번째는 그런데이 좋은 은사 성령님께 민감해야 엉뚱한 영의 세계에 민감해서 안 된다라는 겁니다 고린도
52:09 교회는 굉장히 은사가 넘치는 교회였어요 넘치는게 근데 이게 교회 문제가 되기도 했어요 예 그 문제 때문에 사도 바울이 2절에 이런 얘기를 해요 너희도 알거니와 너희가 이방인으로 있을 때 말못하는 우상에게로는 그 대로 끌려갔다라고 얘기를 해요 이게 무슨 얘기냐면 너 예수 믿기 전에 너희는 우상을 쫓아서 살았던 그 모습을 아직도 가지고 있어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예 여기서 끌려 끌려갔다는 얘기는 뭐냐면 그냥 아무렇치도 않게 그냥 우상을 섬겼다는게 아니라 우상을 섬기면서 벌어지는 영적인 모든 일에 현혹되어서 그것에 빠져서 살았다는 얘기예요 그니까 고린도 교회는 굉장히 영적으로 탁한 그러한 곳이었어요 그러니까 우상들이 그냥 죽은 우상처럼 아무런 역사가 없던 그런 일들이 아니라 거기에 있는 사람들이 우상을 섬기면서도 방언도 하고 예 여러분들 그거 아시죠
53:12 어 절에 가도 방언하는 사람들 있는 거 아시죠 어 모스크에 가도 이사람들도 이슬람 교도들 방언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게 뭐 예수 믿는 사람은 방언하는게 아니에요 예 그니까 우리는 성령의 역사하심으로 방언을 하지만 예 그들은 다른 영에 붙잡혀서 그런 일들을 해요 그래서 고린도서 11장 14절에 보면 그런 현상들을 보면서 사도 바울 그런 얘기를 하는 거 야 그것들 보면서 이상한 일로 여기지 마 그 이상한 거 아니야 그들이 영적인 이상한 것들을 행하고 영적인 뭐 역사들이 일어난 거 이상하게 여기지만 왜냐하면 왜 그런 일이 벌어지면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청사로 해가지 가장해서 사탄도 예 그런 일을 행하기도 해요 사탄도 그러다 보니까 교인들만 방언하는게 아니에요 교인들만 방언하는게 아니기 때문에 근데 문제는 뭐냐면 옛날에
54:17 거기에 이끌려 살던 사람들 있잖아요 그런 그 우상을 섬기면서 거기에 이렇게 갇혀서 살았다는 자꾸 그런 쪽으로 이렇게 만 생각하면서 그런 쪽으로 메이게 돼요 그런 쪽으로 어 메이게 되는 그래서 어떤 분은 무당인 하시던 분이 예수를 믿잖아 그럼 자꾸 신비적인 것을 이렇게 못 버리는 그런 것들을 보게 되는 거랑 마찬가지예요 그 고린도교회 성도들은 자꾸이 우상이 왕성한 그러한 곳에 있다 보니까 신비적인 것을 버리지 못하고 또 그게 최고인 줄 알아요 그런 현상들이 최고인 줄 알아요 그게 예수를 잘 믿는 현상이라고 자꾸 생각하니까 사도 바울이 아니야 아니야 근데 그렇다면 그렇다면 우리가 받은 은사가 이게 성령님이 주시는 은사인 잘못된 건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그래서 사도 바울이 3절에 그런 얘기 하는 거예요 3절에 보면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리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만한 자는 누구든지 저 예수를 저주할 자라 하지 않아요 그니까 누구든지 제대로 된 은사
55:23 성령이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있으면 예수를 저주하지 않아요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일이 되지 예 그리고 성령을 아니하고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어요 그니까 예수님을 주님이시라고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라고라고 제대로 인정하게 만드는 그러한 상황이나 그런 은사들은 그건 제대로 된 거예요 예 그래서 이런 것을 가지고 분별할 필요가 있어요 그 영적인 건요 여러분들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요한일서 4장 1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어떤 영적인 것이 벌어진다 그래서 그게 다 성경적이고 제대로 된 영적인게 아니에요 예 그래서 이게 하나님께 속해 있는 것 성령의 역사 역사인지 분별하라 왜냐하면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기 때문에 그렇다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물론 예를 들면 여기 은사 중에 병 고치는 은사가 있거든요 병고치는 은사 옛날 한국에 병고치는 은사가 지신 분들이 꽤 있었어요 근데
56:27 굉장히 많은 분들이 그게 성령으로부터 온 줄 알았는데 굉장히 많은 분들이 교주가 되고 막 이런 일도 있잖아요 예 그러니까 병을 진짜로 고쳤다고 해서 그게다 하나님으로부터 나타나는 거는 아니다라는 거예요 항상 어떻게 분별해야 되냐면 고린도서 12장 7절에 나온 것처럼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면 이걸 잊지 말아야 돼요 나의 신앙에 유익해야 되고요 교회에 유익해야 되 되고요 은사는 교회에 유익해 되고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 유익해야 이게 바로 성령이 주시는 은사라는 것을 어 알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여러 가지 은사가 있지만 사도 바울은이 은사에 대해서 특별히 강조해요 14장 1절에 보면 예 사랑 사랑을 추구하며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 특별히 예언을 하려고 하라 예언의 은사를 가지려고 하라라고 얘기해요 왜냐면이 예언은 아까도 기 들 말씀과 연관이 있는 거거든요 가르침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57:30 예언의 은사를 사모하라 그래야 말씀이 있어야 말씀이 있어요 이것을 제대로 분별할 수 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특별히 이것에 대한 이야기를 말씀하기도 합니다 예 그러면서 사도 바울은이 방언의 은사에 대해서도 설명을 하죠 예 14장 13절에 보면 그러므로 방언을 말하는 자는 통하기를 기도하라고 얘기를 해요 왜 방언을 하는 사람은 내가 뭔 소리 하는지를 모르고 말씀을 하는 거거든요 예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그런 얘기를 해요 어 내가 얘기를 했는데 내가 뭔 소리 하는지 모르니까 이게 성령이 주신 건지 아닌지는 헷갈리잖아 그러니까 그것에 대해서 통역을 할 수 있게 돼서 이것을 분별할 수 있도록 하는 거예요 그래서 사도 보이 그런 얘기를 해요 내가 만일 방언으로 기도하면 나의 영이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서 내 영예는 좋은데 나의 마음은 열매를 맺지 못해요 왜 뭔 소리 하는지 모르니까 그래서 그러면 어떻게 할까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58:32 마음으로 기도하여 내가 영으로 찬송하고 또 또 마음으로 찬송하리라 어떻 하면요 그것을 통역할 수 있으면 예 통역할 수 있으면 그래서 방언에 은사가 있는 분들은 굉장히 좋아요 왜냐하면 기도도 되게 열심히 하고요 기도도 오래하시고네 예 그것 때문에 신앙이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분들도 되게 많아요 되게 많지만 그러나 어 이것이 성령님이 주신 것에 대한 확신을 위해서 어 통역의 은사도 구하라라이브 라고 얘기해요 예 그러면서도 그러면서 그 야고보서 5장 14절에 그런 말씀하죠 어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그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59:36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그를 위해 기도할지니라 뭐 교회 장로님들이 병고 집에 은사가 있는 분들은 아니거든요 근데 교회를 대표하는 분들이에요 다시 말해서 교회가 그들을 위해서 기도해 주라는 이야기거든요 예 그러니까 은사가 있든 없든 우리가 해야 되는 일은 바로 이거예요 이거예요 에 그리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도록 하는 거죠 예 그리고 특별히 우리가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뭐냐하면 영 분별의 그 은사가 필요하거든요 예 10절에 보면 영들 분별하는 은사가 나오죠 그죠 근데 우리가 좀 조심해야 되는 것 중에 하나가 뭐냐하면 어떤 분은 자기에게 이런 이런 은사가 있다라고 착각해서 마음대로 남을 정제해 그리고 남을 판단해요 저 인간은 아니다라고 저건 사탄의 일이라고 막 이렇게 어 전혀 두려움 없이 이렇게 막 이야기하는 분들이 있는데 조심할 필요가 있어요 그건 내 판단이지 성령님께서 주시는 판단인지 내가 영의 영 분변의 판단이
01:00:41 있는 은사가 있는지 없는지 좀좀 점검할 필요가 있어요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이 영분 그 은사는 다른 두 가지 은사가 병행이 돼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게 뭐냐면 8절에 보면 두 가지 은사가 나오죠 예 거기 보면 지혜의 말씀을 또 지식의 말씀을 이거로 제대로 말씀을 제대로 가지고 있어야 영 분별의 은사가 나오는 거예요네 자꾸 제 얘기를 해서 죄송한데 제가 신학교 다닐 때 제가 살던 볼티모아 어 한국에서 굉장히 만 명 정도 모이는 교회 교회가 갑자기 볼티모어의 기독교 라디오를 만들어 준대요 한인들을 위해서 예 예 그래서 엄청난 돈을 이렇게 서포트해 가지고 볼티에 기독교 라디오가 생긴다는 거예 이제 라디오만 틀면 기독교 방송이 나오는 거예요 굉장히 많은 분들이 기대를 했어요 와 어 한인들도 별로 없는데 참 교회가 큰 일을 한다 그러면서 자기 교회
01:01:44 담임 목사님 간증 집을 쫙 이렇게 돌려 줬거든요 이렇게 사람들한테 나눠줬어요 그러니까 이제 저도 이제 읽어 봤죠 근데 그책을 딱 읽자마자 냐면 아 이게 이단이냐 그냥 그분의 간증한 있는데 딱 이단이라고 생각 되어졌어요 예 그래서 야 이거 참 위험한데 근데 뭐 제가 뭐 힘이 있어요 전도사가 예 뭐 막을 수도 없는 거고 그냥 제가 스스로 딱 생각했는데 딱 1년 정도 지나니까 한국의 신문에대 크게 났더라고요 예 그 그 교회 그 교회 이님이 그 만민 중앙 교회예요 예 만민 중앙교회 이재록 목사라는 분인데 이단으로 판명다고 그분 감옥 갔잖아요 예 그리고 그 사람이 감옥에서 죽었어요 감옥에서 있다가 죽었거든요 그래서 그 딸인가 누군가가 지금도 그 목회를 이어받아 가지고 쌍둥이 목회가
01:02:48 해요 예 여자 둘 분이서 목사가 돼 가지고 쌍둥이 목회가 해 가지고 어 지금도 그 이재롱 목사 이렇게 사진 앞에다 놓고 와서 이렇게 절하고 우리 아버지 교회를 만드신 아버지라고 그래가지고 막 하여튼 근데 이제 저는 그다 이단이라는게 나오자마자 소속으로 그런 생각했어요 내가 영 분별의 능력이 있나 은사가 있나 그리고 또 한번은 그 어떤 분이 저한테 천국에 갔다 왔다라고 자기가 쓴 얘기 그 간증문을 저한테 누가 주셨어요 목사님 읽어보라고 딱 읽자마자 아 이분도 이단이나 근데이 문제가 뭐냐면 그 앞에 누가 어 그거 추천서가 있었어요 추천해 준 분이 있잖아요 근데 한국에서 큰 교회 담임 목사님이 그래서 제가 그 책을 읽고 이분 왜 이런 사람한테 추천을 했지 좀 걱정을 하면서 읽었 걱정을 했거든요 근데 니나 다를까 좀 있다가 그 책도 이제 2단이라는 얘기가 나왔는데 그래서 이분 어떻게 됐지
01:03:52 봤더니 어 그분이 그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추천해 주신 분이 자기가 추천한게 아니라 자기 교회 비서가 추천한 거를 올린 거라고 자기는 몰랐다고 뭐 이렇게 얘기를 한 적이 있는데 제가 그런 거 보면서 내가 어떻게 이런게 딱 알 수 있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다른 것 때문이 아니에요 말씀을 알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신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신학을 통해서 말씀속에 이런 있는지 말씀에 맞는지 아닌지를 아는 거지 뭐 제가 근데 자연스럽게 뭐가 되는 거예요이 분별이 되는 거예요 분별이 그래서 영은 영 분별은 지혜와 지식의 말씀에이 어 은사가 같이 있어야 가능한 거다라는 거예요 자칫 잘못하면 엉뚱한 사람 우리는 정지하게 되고 하기 때문에 굉장히 조심할 필요가 있다라는 거예요 또 특히 예언의 말씀도 있 예언의 은사도 있거든요 근데 많은 분들이 착각하면 안 돼요 여러분들 예언의 은사는 미래를 기 하는게 예언의 은사가 아니에요 근데
01:04:58 여러분들이 미 예언의 은사는 미래에 대해서 어떻게 벌어질 일이 되는 것을 예언하는 것을 예언사 생각하는 이유가 뭐냐면 구약의 선지자들이 그런 일을 했기 때문에 그래요 구약의 선지자들은 야 몇 년 뒤에 이스라엘이 망할 거고 야 몇 년 뒤에 유다가 망할 거니까 너희들이 지금 이렇게 살아라고 구역의 선지자들이 예언을 했잖아요 그런 걸 보면서이 예언이라는게 그런 거라고 착각하기 쉬운데 아니에요 예 더 이상 그 예언은 예언의 은사 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예언은 아니에요 그 이유가 뭐냐면 성경이 완성기 때문에 그래요 신구약 성경으로 더 이상 하나님은 새로운 말씀을 주시지 않아요 그니까 구약의 선지자처럼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말씀을 받아서 전달한다라는게 성립이 안 돼요 어디서 말씀 받는 거예요 신약 성경을 통해서 내가 말씀을 받아서 전달해야만 되기 때문에 말씀은 없어요 물론 신구약 성경 안에 그런 건 있어요 내가 다시 올 거야 그 미래에 된 얘기잖아요
01:06:02 재림의 주님 뭐 이런 얘기는 있을 수 있어요 근데 그 말씀 속에서 벗어나면 안 돼요 새로운 말씀을 받아서 안 되는 거예요 예 그 이유는 뭐냐면 성경이 완성되기 때문에 그래서 요한계시록 22장 10 그 8절에 보면 성경 마지막 부분에 해당되는 거거든요 이런 얘기를 해요 내가이 두루마리의 예언의 말씀을 듣는 성이요 듣는 모든 사람에게 하니 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친구야 성경 외에 어떤 말씀을 내가 내가 말씀 받았어고 얘기하잖아요 근데 그게 신구약 성경이 없잖아요 그럼 큰일 나는 거예요 그게 이단이요 그래서 하나님이이 두루 만에 기록된 재앙들을 그에게 더하실 거 이것만큼 엄청난 이단은 없거든요 이것만큼 사람들을 현혹되 가고 무너지게 하는게 없기 때문에 예 그래서 지금은 예언의 은사라는 건 뭐냐면 성경의 말씀을 받아서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예언의 은사에 예언의 은사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01:07:05 생각하는 것처럼 점쟁이처럼 뭐 미래 얘기를 얘기하고 그게 맞고 틀리고 예언의 은사는 그런게 아니에요 혹시 그런 것처럼 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이단이고 여러분들이 조심해야 되고 그것은 성령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다라는 것을 그니까 이러한 것들을 은사라고 가장해서 성이 아닌 것 성의 심이 아닌 것들이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 필요는 있다라는 것이죠 그리고 세 번째로는 우리는 더욱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말씀을 합니다 은사장 12장 마지막 절에 보면 31절에 이렇게 말씀을 해요 너희는 더 큰 은사를 사모하라고 얘기해요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렇다면 가장 은사는 큰 은사는 뭘까요네 더욱더 큰 은사는 뭐냐 하면 이게 12장 마지막에 있거든요 그래서 더욱더 큰 은사에 대한 설명이 그다음 장에 나와요 고린도 13장에 나와요
01:08:09 그럼 더욱더 큰 사는 뭘까요 고린도서 13장은 무슨 장이에요 사랑 장이죠 그러니까 더욱더 큰 은사인 사랑의 은사를 사모하라고 얘기하는 거예요 예 더욱더 큰 은사 예 그 하나님 저도이 사랑의 은사를 저에게 주세요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는데요이 사랑의 은사는 우리가 이미 가진 은사에 사랑의 은사가 포함되어서 은사가 완성되게 해요 예언의 은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사랑의 은사를 갖게 되면 이것이 무조건 정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나와서 들려지게 되는 거죠 섬김의 은사도 마찬가지예요 섬김의 은사도 사랑의 은사가 더해짐으로 말미암아 제대로 섬기게 되는 거죠 그죠 만약에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섬김의 은사 때문에 더 이렇게 부딪히는 사람들 많아요 예 나는 열심히 치우고 있는데 열심히 치우고 있는데 저기 노는
01:09:14 인간을 보면 막 화딱지가 나거든요 예 예 그러면서 저 나쁜 인간들 욕하면서 막 섬기는 거예요 섬기면 은산 있으니까 그러면 교회는 이게 시험에 되는 거예요 예 사랑의 은사를 가져야만 아 저 사람도 좀 저럴 수 있지 예 근데 나에게 주신 은사는 이건 내가 은혜니 나는 여기 충성해야 뭐 이런게 사랑의 은사에네 그니까 모든 은사에 위해 사랑의 은사가 더해질 때 이게 제대로 되는 거예요 근데 왜 사랑의 은사가 더 사모하라고 얘기할까요 사랑의 은사가 왜 필요할까요 그 이유는 오늘 말씀에 보면 12절 에 보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몸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무슨 얘기냐면 한 몸이 돼야 되기 때문에 그래요 한 몸이 돼야 되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 안에 붙어 있는 지체들이 지체들이 이게 연결이 뭘로 되냐면 사랑으로 연결이 돼야 하나가 되는 거예요 예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이유는 사랑이
01:10:19 없기 때문이기 때문에 바로 그렇다라는 거 성경은이 하나 되는 걸 굉장히 강요해요 고린도서 12장 13절 절에 보면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한 몸이 되었고 그덕분에 또한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기 때문에 교회는 언제든지 하나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해요 하나되기 위해서 우리는 사랑의 어 은사를 사모해야 한다라는 거죠 우리의 어느 부분 중에 섬김의 부분 중에 어느 부분 중에 하나가 되지 못한 부분이 있으면 우리가 하나님앞에 기도 돼요 하나님 사랑의 은사를 나에게 주세요 사랑의 자를 줘서 하나되게 해주세요라고 얘기할 필요가 있죠 또 사랑의 의사가 필요한 이유는 뭐냐하면 26절에 보면 이런 얘기가 있어요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 어 26절 전에 24절 먼저 보죠 예 24절 보 우리가 아름다운 지체는 그럴 필요가 없느니라 오직 하나님의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귀중함을 더하사 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01:11:24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 라 그래서 사랑의 은혜가 필요한 은사가 필요한데 이게 무슨 얘기냐면 여러분들 이미 아름다운 지체는 사람들이 인정해 주고 좋아요 뭐 예를 들어서 우리 몸에 이렇게 있으면 머리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잖아요 머리는 그래 머리는 이미 인정해 인정해요 그래서 야 머리가 얼마나 중요한데이 머리 다침 큰일나 뭐 다들 인정해요 근데 하찮게 여는 부분들이 있어요 몸 중에 예를 들면 뭐 액기 손가락의 손톱 이거 뭐 그렇게 귀중하다고 생각 많이들 안 할 수 있어요 예 근데 이게 굉장히 중요한 거거든요 여러분들 귀가 간지 오면이 이게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해요 예 몰라 귀가 커 가지고 귓구멍이 커 가지고 이걸로도 들어가는 분이 있는지 모르지만 예 근데 이게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이게 귀한 줄 몰라요 사랑의 은사가 있으면이 하차는 것도
01:12:30 우리는 존귀하게 봐요 귀중하게 본다 교회도 마찬가지예요 교회에서 어떤 큰 일을 하는 사람들은요 아 다들 인정해 주고 좋아요 예 근데 예를 들어서 교회에서 정말 아무도 안 인정하지 않는 그러한 일을 하고 있는 그러 분들 있잖아요 예 그 사람을 존귀하게 보는 사람은 누구냐면 사랑의 은사가 있는 사람은 그 사람을 존귀하게 보게 돼요 네 그런 사랑의 은사가 없으면 누구나가 다 큰 일만 하고 싶어해요 누구나가 다 직분 높은 직분 높은 높고 낮은 직분은 없지만 누구나 가다가 뽀대나는 그런 일만 하고 싶어 해요 그런 사랑의 은사를 가지게 되면 모두가 다 귀한 줄 보게 돼요 오히려 더 작은 것 예 부족한 지체가 더 귀하게 여겨지는 거예요 그래서 저 말씀에 보면 부족한 지체에게 규정함을 더하신 것을 보게 되는 거예요 예 이게 사랑의 은사를 가진 성도의 모습이 그래서 사랑의 은사가 필요한 거예요 그리고 또 사랑의 은사가 필요한 이유는 뭐냐면 고린도서 12장 26절에 보면 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01:13:33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보통을 받는 거거든요 원래 그니까 아무리 부족한 새끼 손가락이지만 여기에 염증이 생기면 내 온몸이 아파요 예 하나가 아프면 다 아프게 되는게 정상이에요 그게 교회 모습이에요 예 그리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하는게 예 이게 원래 그래야 돼요 근데 교회가 다 그러냐 그렇지가 않거든요 교회가 누가 힘들고 어렵다면 우리가 함께 아프고 함께 슬퍼하느냐 그렇지가 않아요 근데 언제 함께 슬퍼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어요 우리가 사랑의 은사가 있을 때 이게 함께 동고동락을 함께 동고동락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지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러기 때문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냐면 사랑의 은사가 필요하다라는 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가진 은사가 뭔 몰라요 그러나 그 은사로 주님을 섬겨 나갈 때 저는 그 위에 사랑의 은사로서 덧입혀 주기를 소망하는 기도하는
01:14:38 예 그래서 성령께서 더 크게 역사하심을 체험하는 그런 우리들이 되어지기를 원합니다 이제 말씀의 결론을 내리죠 여러분들은 은사 아면 어떻게 생각을 하십니까 오늘 설교를 들으면서 은사 어떻다고 생각을 하세요 어 여러분들이 받은 은사는 뭐라고 생각을 하십니까 나중에 시간이 되면 뭐 은사 세미나도 하고 그러면 이제 뭐 여러분들의 은사를 발견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도 할 수 있고 하는데요 근데 가장 어 쉬운 은사 방법은 뭐냐면 여러분들이 관심이 가잖아요 그럼 거기에 은사가 있는 거예요 관심이 가면 처음에는 비판할 수도 있어요 아 왜 우리 영락교회는 이런 걸 잘 못 하지 그 은사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그럼 여러분들이 하세요 예 혼자서 못 하겠으면 저한테 와서
01:15:41 얘기해 주세요 아 목사님 안타까워요 우리 교에서 이런 거 잘하면 좋은데 그럼 저는 비판한다고 생각 안 하고요 여러분들 도와드릴게요 힘 낫는 대로 왜냐면 거기에 은사가 있기 때문에 관심이 가는 거예요 은사가 없으면 아예 관심이 없어요 그런 걸 무시하지 말라는 얘기예요 저는 여러분들이 은사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어요 왜냐하면 바로 그 은사는 성령님이 주신 은사 때문에 그래요 그 은사를 가지고 아무것도 안 하면 왜 성령님이 주셨는지 그리고 성령님이 그 은사 위에 능력을 부어 주심을 체험하지 못해요 저는 여러분들 은사에 관심을 가지고 그 은사를 활용하려고 하면서 더욱더 성령님 의지하면 살다 보면 예수 믿는 재미가 뭔지 알아요 바로 그걸 느끼기 원해요 그리고 성령의 능력이 함께 하신다는게 뭔지를 아는 그걸 간증할 수 있는 여러분들이 되기를 원해요 근데 아무리 은사가 중요하더라도 엉뚱한 영에 빠지지 않기를 원해 은사는 영적인 거기 때문에 자칫 잘못하면 내가 그것 때문에 넘어질 수 있어요 교만하게 만들 되기도 해요
01:16:45 어쩔 때는 예 그렇기 때문에 항상 이게 성령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 지에 대한이 영 분별이 필요해요 항상 말씀 안에서 성경 안에 성경대로 말씀대로 예 그 은사를 써 섬겨 가는 여러분들이 되셔야 돼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여러분의 그 받은 은사 위에 사랑의 더 큰 은사가 그것을 섞임으로 말미암아 사랑의 은사로 말미암아 우리 모두가 한 지체로서 제대로 서고네 작은 것을 보면서도 존귀하게 여길 줄도 알고 예 그렇게 정말 동고동락할 수 있는 함께 기뻐하고 함께 즐거워할 수 있는 한 지체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는 그런 사랑의 은사를 갖는 예 바로 그러한 성도들을 통해서 성도 우리가 되어짐 말미암아 성령의 역사 속에 성령의 함께하심 속에 성령의 능력 속에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어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